정치 철학자 자크 랑시에르는 ‘치안’와 ‘정치’을 구분한다. 그에게 ‘치안’이란 이미 주어져있는 상태를 당연한 것으로 여기는 것이다. 치안의 장소에서 발생한 갈등은 관리 대상이다. 이러한 관리는 결국 이미 주어진 상태를 어떻게든 계속 유지하는 정치적 효과를 낳는다. 반면에 ‘정치’란 몫이 없는 자들이 몫을 주장하는 것이다. 그것은 배제와 포함의 틀을 부숴버리는 정치적 행위이다.
랑시에르에 따라서 우리는 ‘커뮤니케이션’을 전혀 다르게 정의할 수 있을지 모른다. 랑시에르의 말을 변주한다면, ‘커뮤니케이션’이란 말할 수 있는 자의 말을 '듣는' 것이 아니라 목소리를 낼 수 없는 자들의 목소리를 '내는' 것이 아닐까. ‘커뮤니케이션’을 이렇게 정의할 때, 우리는 무언가를 가리기 위한 과잉의 말들, 고통스런 비명들, 침묵들 심지어는 죽은 자들의 목소리까지도 들을 수 있지 않을까? 빙의.
아니? 죽은 자의 목소리를 듣다니? 신내림이라도 받아야하는 걸까? 허나 꼭 진짜 무당이 될 필요는 없다. 이미 그들은 이미 죽음이라는 말 아닌 말을 남기고 갔다. 이것이야 말로 고통 받는 자들의 마지막 말 아닌 말이라면, 우리는 죽은 자의 목소리를 내야만 할 것이다. 고통을 공통(Common)으로 만들 + 기(cate + tion). Communication.
해피 버스 데이 벤야민.
'끄적끄적' 카테고리의 다른 글
<애도 일기> 발췌 (0) | 2016.04.22 |
---|---|
overgrown (0) | 2015.02.03 |
오늘의 뮤직 (0) | 2014.06.16 |
헉! 문학이론입문에서 유령들이! (1) | 2014.04.02 |
대학원에 합격을 했다. (1) | 2013.12.09 |